재미없는 나의 일상2011. 3. 14. 07:30

어렸을 적, 시장에 장을 보러 가면 어머니는 항상 구석에서 홀로 나물을 파시는 할머니 가게에 가셨다.
가게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길에 헝겊하나 펼쳐놓고 파시는 노점상 이었다.

나는 이 할머니 가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때묻은 손으로 나물을 정리하는 모습이나 가게 주변의 지저분한 상황들을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나물 가격을 들쑥날쑥 부른다는 점이 불쾌했다. 
한번씩 어머니를 보면 바가지를 쒸우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이 나물 얼마에요?"
"어..어?? 이 나물.....3천원..3천원이야.."
"그래요? 이거 하나 주세요."


"엄마! 이거 앞 사람에게는 2천원에 팔았어." "저 할머니 일부러 속인거야? 아님, 건망증이야?"
"그런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단다. 우리가 조금 이해해야지."






외할머니는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생전에 제대로 모시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자주 훔치고 했던 어머니.
추운 날에도 홀로 시장거리에 나와서 물건을 파시는 할머니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도 어렸던 나는 어머니가 잘 이해가지 않았다.
왜 치매에 걸린 사람이 장사를 해야 하는지? 가족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간식 살 돈이 이름도 모르는 할머니에게 간다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 뿐 이었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 사람들과 요양원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 서울을 벗어나서 경기도권으로 내려가야 했다.
중증 환자를 위한 요양원의 경우에는 주민들의 반발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양원은 상당히 컸고, 시설도 괜찮은 편 이었다. 직원들도 친절했다.
하지만, 주말임에도 방문객이 거의 없었다.

요양원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치매환자, 알츠하이머 환자 였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치매로 고생하고 있는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물을 마시고 있으면서도 계속 물을 요구하신다.
환자분에게 다가가면 똥, 오줌 냄새가 진동 한다.
의미없는 행동·했던 말을 반복하기도 하고, 자원봉사자에게 자식이름을 부르면서 반가워하기도 한다.


외양은 분명 사그라지기 직전이지만, 행동은 영락없이 아기들 모습이다.
특히 그분들의 눈을 보면 한없이 맑디 맑은 눈이다.
그러나, 아기를 보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겨우 몇 시간 뿐이었음에도 땀이 줄줄 흐른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난다. 혹시라도 우리 어머니도....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가는 길,
어머니가 좋아하는 흑임자와 3천원짜리 나물 한봉지를 사가지고 들어간다.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2천원짜리 나물을 3천원에 산 이유를....




Posted by 눠한왕궤